2025.07.10
PERSPECTIVE 1. 이상해도 괜찮아, BIFAN
지난 7월 3일, 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의 막이 올랐습니다.
‘이상한 이야기’를 기꺼이 환영하는 영화제 BIFAN은, 장르 영화라는 뚜렷한 색깔로 29년간 독보적인 정체성을 구축했습니다.
수많은 영화제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일관되게 장르 영화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확장해왔죠.
호러부터 SF, 판타지까지. 기기괴괴한 상상력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이곳에서 관객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경험들과 마주합니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비주류 장르 영화들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죠. 다른 영화제나 극장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작품들이 여기서는 오히려 중심에 놓입니다. 그래서 BIFAN은 장르 영화 마니아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영화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BIFAN은 ‘무슨 이야기를 다룰 것인가’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올해 개막작 <그를 찾아서>는 AI가 쓴 시나리오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감독 피오트르 바조브스키는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 시나리오를 AI에 학습시킨 뒤,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2024년부터는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하고, 필름메이킹 워크숍과 콘퍼런스를 통해 AI와 영화 제작의 접점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죠. 기술이 창작의 영역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지금, BIFAN은 AI의 기술적 활용을 넘어 창작의 의미와 윤리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실험은 이머시브 전시 섹션 ‘BEYOND REALITY’에서 펼쳐집니다. 스크린 앞에 앉아 ‘관람’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관객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XR과 AI 기술을 매개로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전시는 지난 10년간 BIFAN이 꾸준히 확장해온 새로운 형태의 영화적 실험입니다.
단순히 '보는 것’에서 ‘깊이 체험하는 것’으로의 콘텐츠 변화.
관객은 이제 작품의 일부가 되어 감정을 주고받고,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을 직접 만들어갑니다.
PERSPECTIVE 2. 예술과 명상 사이의 <무아>
"사실 처음에는 정말 의외였어요. 명상 앱이 영화제에 초청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무아(MUA) 사업을 진행하는 VUE사업부에게도 BIFAN 초청 소식은 예상 밖에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BIFAN이 추구하는 경험의 확장과 무아가 제시하는 새로운 몰입형 경험은 같은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다만, ‘명상 앱’이 예술 작품들 사이에 자연스레 녹아들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관객이 무아를 어떻게 경험하고 느낄지, 그 ‘감정과 방식’에 더 집중해 보기로 했죠.
”예술이 가진 힘 중 하나는 쾌, 불쾌와 관계 없이 '보기 전'과 '본 후'의 감각이 달라진다는 것이에요.
일상과 다른 감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의 저력이죠,
명상도 마찬가지예요. 접하기 전과 후의 내면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예술과 명상의 접점을 발견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공간 디자인을 맡은 VUE 심서영 디자이너는 그 내면의 변화를 ‘공간적 대비’라는 키워드로 풀어냈습니다. 거칠고 인터스트리얼한 기존 건물 분위기와 완전히 대조되는, 오롯이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무’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죠. 이를 위해 구상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기본 도형만을 활용해 미니멀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구현했습니다. 또한 동양의 오방색 중 하나인 벽색(푸른색)을 활용해 동양적인 무드를 더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무아 부스는 BEYOND REALITY 초입에서 관객을 가장 먼저 맞이했습니다.
MVEX2025 박람회 이후 두 번째 외부 전시였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달랐습니다. 기술이나 기능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하나의 체험’으로 제안하는 자리였으니까요.
‘앱’이라는 틀 안에 머물렀던 무아의 경험을 공간으로 확장하고 그 안에서 관객이 무아와 어떻게 마주하는지를 직접 지켜본 이번 시도는,
우리에게도 분명 하나의 전환점이자 깊이 남는 경험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PERSPECTIVE 3. 경계 밖에서, 감각 안으로
무아를 비롯해 BEYOND REALITY에 초청된 콘텐츠들은 공통적으로 ‘보는 예술’을 넘어 ‘직접 체험하는 예술’로 경험의 확장을 제안했습니다.
관객이 작품 안으로 깊이 개입하고 반응하게 만들었죠.
중국의 민주화 시위를 다룬 XR 다큐멘터리 <내가 아는 이선생님에 대한 모든 것>은 관객이 인터랙티브 요소를 통해 답답한 상황에 직접 개입하고, 그 흐름을 응원하게 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정서적인 관여를 유도하며 감정의 동요를 이끌어냈습니다.
<트레이스: 애도의 프로세서>는 무아처럼 감정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진 체험형 콘텐츠입니다. 여러 명의 참가자가 슬픔을 함께 인식하고 되짚으며, 치유의 과정을 따라가도록 설계된 이 VR체험은, 관객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감정을 직접 마주하게 만듭니다. 타인과 나의 감정이 한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서로에게 반응하죠. 체험이 끝난 후, 조용히 눈물을 닦던 관객의 모습은 이 콘텐츠가 단순한 감각의 자극을 넘어,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이외에도 BEYOND REALITY의 콘텐츠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의 확장을 제안했습니다. 스크린을 넘어 공간 전체를 탐색하게 하거나, AI 기술로 과거의 인물을 재현하고, 서사에 인터랙션 기술을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몰입의 방식을 만들어냈죠.
작품마다 다루는 주제는 달랐지만, XR·AI 기술을 통해 ‘체험하는 예술’을 만든다는 흐름은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아직은 시장도 작고 대중의 관심도 제한적이지만, 서로 다른 배경과 시선을 지닌 창작자들이 한 공간에 모여 기술을 매개로 예술을 확장하고, 그 가능성을 함께 탐색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큰 의미를 남겼습니다.
PERSPECTIVE 4. 콘텐츠 경험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공포, 판타지, SF 장르 영화부터 AI와 XR을 활용한 몰입형 콘텐츠, 그리고 명상 앱까지.
BIFAN은 언뜻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형식들을 하나의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콘텐츠의 경계를 끊임없이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관객’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작품에 더 깊이 참여할 수 있을까.
BIFAN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익숙한 틀을 벗어나 기꺼이 ‘이상함’을 선택하고, 스크린 바깥에서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엔피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 감상하는 방식, 관객과 연결되는 방식.
그 모든 것이 다시 쓰이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관점의 도전을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