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9
우리는 늘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을 합니다.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가도, 괜찮은 카페에 들러도 “이 공간은 어떻게 기억될까?” 를 떠올리죠.
좋은 경험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아닙니다. 어떤 장치가 감정을 남기고, 어떤 흐름이 기억을 붙잡는지에 따라 그 깊이와 무게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세계박람회는 특별합니다. 전 세계가 모여 각국의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는 거대한 경험의 무대니까요.
기술·디자인·이야기가 만나 추상적인 미래를 구체적인 체험으로 풀어냅니다. 새로운 콘텐츠 경험을 만드는 우리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였어요.
이번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답사의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오사카 엑스포는 안 가나요?” 프로젝트 회의 중, 직원의 한마디에서 시작됐어요.
얼마 뒤 회사엔 답사단 모집 포스터가 붙었고, 신청과 선발 절차를 거쳐 디자이너·기획자·에디터가 한 팀이 되었습니다.
준비도 자유로웠습니다. 업무 틈틈이 모여, “이건 꼭 보자”, “이건 미리 공부하자”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대기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사전 예약 추첨에는 모두 떨어졌고, 당일 예약에 도전하거나 현장에서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야 했습니다.
보고 싶은 파빌리온도 서로 달라 한국·미국·일본처럼 겹치는 곳만 함께하고 나머지는 흩어져 관람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더더욱 현장에서 각자의 시선을 자유롭게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여행처럼 가볍지만, 각자의 전문성을 비틀어 보는 워크숍이었습니다.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55년만에 일본에서 개최되는 등록박람회.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를 위한 디자인(Desinging Future Society for Our Lives)’ 을 주제로
2025년 4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오사카 유메시마 인공섬에서 개최된다.
4일 동안 수만 명의 관람객과 함께 걸었습니다.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의 디자인’을 주제로 한 160개국의 전시를 직접 마주했습니다.
거대한 파빌리온부터 몰입형 체험까지, 세상의 모든 시도가 모인 현장이었습니다.
사실, 출발 전까진 엑스포가 어떤 자리인지 잘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세계 3대 메가 이벤트, 수천만 명의 관람객. 화려한 수식어도 막상 와닿진 않았어요.
하지만 현장은 역시 달랐습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하루 20만 명이 넘는 인파 속에서 직접 가봐야만 알 수 있는 스케일과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또한 같은 장면도 각자가 쌓아온 경험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들린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누군가는 공간을, 누군가는 운영을, 또 누군가는 상징을 보았죠. 그 차이가 이번 답사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이어갈 다음 이야기를 열었습니다.
Perspective 1. 디자이너 : 말을 거는 공간
VUE 이가현
저의 관람 포인트는 “의도한 메시지가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되는가” 였어요.
화려한 장치나 거대한 규모보다 중요한 건, 관객이 전시를 관람하고 돌아갈 때 기억하게 될 것들이었죠.
공간 디자이너라면 외관을 우선적으로 볼 거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이 제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시선에서 일본관은 가장 인상적인 전시였습니다.
거대한 원형 파빌리온과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내부 동선은 ‘순환’이라는 키워드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습니다.
건축 재료는 전시가 끝나면 해체해 재사용할 수 있게 설계 됐고, 콘텐츠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끊임없이 같은 메시지를 반복했습니다.
공간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느껴졌죠. 덕분에 쉽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었어요.
공간을 설계할 때 가장 어려운 건, 관객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를 상상하는 일인데요,
일본관은 그 질문에 적절한 답을 준 전시였어요. 복잡하지 않았고, 메시지가 명확했습니다.
한국관 역시, 외관부터 시선을 끌었습니다.
미디어 파사드가 결합된 외벽의 첫인상은 강렬했고, 대기 공간의 체험 콘텐츠가 내부 전시로 이어지도록 한 구성은 확실히 돋보였습니다.
특히 관객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 조명과 소리로 연출한 쇼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이러한 참여형 체험 덕분에 전시 초반부터 깊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다만, 메시지 전달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세 개의 전시관은 모두 ‘연결(Connecting Lives)’을 주제로 했지만,
메시지의 표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다 보니 오히려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는게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풍부한 이야기를 담으려는 건 좋았지만, 끝에 남는 메시지가 조금 희미했어요.
그럼에도 한국관은 디지털과 전통을 연결하여 한국의 정체성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연결'이라는 주제를 조금 더 응축해서 보여줬다면 훨씬 강하게 기억에 남았을 것 같아요.
Perspective 2. 기획자 : 몰입을 지키는 배려
VUE 임상현
가현 디자이너가 ‘공간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저는 ‘마음에 닿는 배려’에 좀 더 중심을 두었어요.
콘텐츠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눠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전에 관람의 몰입이 끊어지지 않도록 운영적인 설계가 되었는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엑스포의 목표 중 하나는 ‘줄 없는 엑스포’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평균 대기 시간은 1~2시간에 달했죠.
사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서 기다림을 완전히 없앨 순 없어요.
그래도 조금 덜 지루하게, 조금 더 쾌적하게 배려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다림도 엑스포 경험의 일부니까요.
그 조차 세심하게 배려받는 경험으로 만들 수 있었다면 훌륭한 콘텐츠에 대한 몰입과 감동이 더 오래 이어졌을 거예요.
그중에서도 눈에 띈 긍정적인 사례로는 ‘그랜드 링’을 꼽을 수 있었어요.
’그랜드 링’은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담은 상징적 존재로 공간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구조물이에요.
둘레만 2km가 넘는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은 기네스북의 화려한 타이틀도 가졌지만, 저에겐 관람 경험을 지탱하는 장치로서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좀 길치인데 그랜드 링에 부착된 번호만 따라가면 길을 헤맬 일이 없었어요.
상징물이자 자연스러운 안내 장치라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기다릴 때도 그늘과 쉴 공간이 마련돼 있어서 체력적으로도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돋보이는 배려의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경험 콘텐츠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엑스포는 저의 과제를 다시금 묻는 자리였습니다.
‘몰입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그 답을 그랜드 링에서 찾았어요. 디테일하게 계획된 배려가 전체 경험에 얼마나 큰 힘을 실어주는지 느낄 수 있었죠.
Perspective 3. 에디터 : 흉내 낼 수 없는 이야기
BRAND CONTENTS 고예원
저는 주제를 말하는 ‘다양한 이야기 방법’에 시선을 두었어요.
엑스포에 참여한 나라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받았죠.
‘미래 사회를 위한 디자인은 무엇인가?’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속가능성, 환경, 협력, 공존.
하지만 그 메시지가 관객에게 닿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같은 메시지라도, ‘고유한 시선을 담은 서사’로 풀어낼 때 더 깊이 공감했어요.
블루오션 돔은 행동의 변화를 이끄는 서사를 보여주었습니다.
메인 영상에는 나레이션도 자막도 없었어요. 이미지와 소리만으로 해양 쓰레기가 생태계에 미치는 충격을 강렬하게 전했죠.
깊이감이 느껴지는 원형의 스크린에 투사된 화면은 몰입을 극대화했습니다. 그리고 문제 제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 구간에서는 관람객이 취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영상으로 제시하며 자연스럽게 참여를 이끌었죠.
저는 실제로 블루오션 돔을 관람한 뒤, 사고 싶던 굿즈의 구매를 망설이게 됐어요.
인식에서 행동으로, 메시지를 움직임으로 바꿔낸 순간을 몸소 체험하며 진정한 콘텐츠의 힘을 느꼈습니다.
캐나다 관도 인상적이었어요. 공간의 중심에는 얼음 조형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AR뷰어로 스캔하면 과거·현재·미래의 풍경이 겹쳐 보였죠.
얼음 사이를 흐르듯 이동하는 관람 방식은 ‘봄철, 강이 녹아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컨셉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강을 따라 펼쳐진 캐나다의 자연과 그 속에 어우러진 인간 삶의 모습을 보니, 거창한 단어 없이도 공존, 순환, 재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화려한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꽤 넓은 공간을 얼음 구조물과 AR 뷰어로만 연출하여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서사가 ‘캐나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느껴져서 좀 더 특별하게 기억됩니다.
모든 국가는 같은 주제를 말했지만, '어떤 경험의 언어로 번역했는가’가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얼음을 통해 미래를 비추기도 하고, 목소리를 빛으로 표현하기도 했죠.
오직 우리만의 어떤 것으로 공감을 얻을 때, 콘텐츠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납니다.
이번 엑스포는 그 사실을 직접 체감하게 해준 곳이었어요.
또 한가지 얻은 것
답사 내내 우리는 각자 보고 싶은 파빌리온을 자유롭게 둘러보다가,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전시장에서 보고 느낀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가끔은 시선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그마저 웃음이 되고 배움이 되었습니다.
틀림 없는 만장일치도 있었습니다. “저녁엔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것. 이 공통점은 우리 사이를 제법 단단히 이어주었어요.
팀이 달라 평소엔 함께할 기회가 드물었는데, 그 며칠 동안은 끈끈하게 모여 하루를 마무리했죠.
이번 여정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답사이면서, 동료들과 마음을 나누는 작은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전시장에서의 경험과 동료와의 소소한 추억들이 겹겹이 쌓여, 오래 마음에 머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