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짧아진 시대, 깊어진 시선

2025.06.01

숏폼드라마 <귀살>의 촬영 현장
일정도 예산도 녹록지 않은 초 단위로 바쁜 숏폼드라마 촬영장이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이 피어나는 분위기의 ‘좋은 현장’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양한 상업 영상을 제작하는 아이엠필름의 대표이자 연출가 ‘신현규 감독님’을 만나보았습니다. 

 
 

 

 

PERSPECTIVE 1. 경험과 기록이 쌓이면 기회가 된다


 

Q. 영화, 영상에 관심을 가지신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처음으로 8mm 테이프에 영상을 찍었었습니다. 개념도 전혀 모르면서 상황을 만들고, 이야기를 담아냈죠대단하지 않은 결과물이지만 그렇게 영화라는 개념의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어요. 장난감을 조립하거나, 하드보드지로 탁구대를 만들어서 놀거나친구들이 많을 땐 이야기를 만들어 역할 놀이를 하는 것처럼요소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하지만 진로를 고민할 때는 공대를 선택했어요.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그러다 친구들이 “넌 당연히 영화나 방송 쪽을 전공할 줄 알았다”라는 말을 듣고는, 삶에 대해 조금 더 넓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군 제대 후, 본격적인 만들기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영화인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영화 ‘7년의 밤’에 참여한 순간이에요. 당시 일본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선배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촬영 감독이 필요한데 제가 떠올랐다고요. 작품 제목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학교에서 본 저에 대한 기억으로 연락을 주신 거였어요.
촬영 전공을 하면서 단편 영화를 정말 많이 찍었고, 현장 경험을 많이 쌓았는데, 덕분에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추창민 감독님의 ‘7년의 밤’에 참여하면서 상업 영화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어요. 이후 원더풀 고스트, 나인룸, 블라인드, 파이프라인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면서 점점 더 경험을 쌓아갔고요.

 

 

Q. 촬영 감독에서 직접 각본과 연출까지 하시게 됐는데, 본인 작품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촬영 감독으로 다양한 영화 작업에 참여하면서 저만의 방식을 늘 머릿속으로 그려봤던 것 같습니다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투자자를 만나게 됐어요.
그동안 작업해 둔 시놉시스를 보여드렸는데, 그 작품이 <문워크> 였습니다그렇게 자연스레 연출을 시작하게 됐죠

사실, 학창 시절부터 시놉시스를 많이 써두는 습관이 있었어요다양한 아이디어를 기록해 두고 필요할 때 다시 발전시키는 스타일이라 지금도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그중 일부는 실제 영화화되기도 했고요. 

영감을 특별한 계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해 두고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다가도 흥미로운 소재를 발견하면 바로 기록합니다그렇게 짧게 써둔 아이디어가 모이면 이야기로 발전이 되더라고요.

 

 

PERSPECTIVE 2.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다


 

Q. 엔피와 숏폼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 특히 공포물에 도전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숏폼드라마는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아이엠필름이라는 회사의 시작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졸업할 무렵 광고나 뮤직비디오 촬영팀에서 일을 했는데요그때 제가 가진 재능을 좀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그런 환경을 직접 만들어 보자 해서 아이엠필름을 시작했습니다숏폼드라마에 도전하게 된 과정도 같은 이유입니다.

상업 영상은 보통 의뢰가 들어오면 제작을 시작하게 되는데, <귀살>의 경우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엔피와 생각의 접점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마침 숏폼드라마는 성장하는 시장이었고, 보통의 드라마와 영화 대비 제작비 부담도 덜했기에 서로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며 시작했습니다. 

공포 스토리는 가지고 있던 영화 시나리오에서 시작했어요. 새로운 도전자 이니만큼 장르의 다양성을 시도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수익도 중요하지만, 보다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방향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고해외의 블룸하우스나 A24 같은 프로덕션처럼 특화된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방향으로 접근했어요.

 

 

Q. 숏폼드라마 <귀살>이 대중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귀살>을 제작할 때 줄곧 생각했던 건, 이런 새로운 장르가 한국 숏폼드라마 시장의 확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현재 숏폼드라마의 소비자층이 특정 장르에 집중된 경향이 있는데, “숏폼 드라마가 이렇게도 만들어질 수 있네?”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형적인 장르와 스토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보여드리고자 했는데이런 점을 <귀살>에게 가장 크게 느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NP XR STAGE에서의 촬영입니다. 스토리 상 판타지 장면이 있었는데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이 많았어요극중 엄마와 만나는 먹먹한 공간이나 장미의 머릿속에만 펼쳐지는 상상 속 공간 표현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엔피에서 XR촬영을 제안해 주셨고시도하는 과정에서도 고민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 만족합니다3D 가상 공간을 활용한 촬영 덕분에 오히려 몽환적인 느낌이 더 잘 표현되었거든요. 판타지의 느낌이 돋보일 수 있어서 좋았고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버추얼 프로덕션 환경이 콘텐츠 제작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 사례인 것 같아요.

 

 
 

   

PERSPECTIVE 3. 짧아서 더 어려운 이야기


 

Q. 숏폼드라마라는 장르가 새롭게 생기기도 한 것처럼 콘텐츠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것 같은데, 이런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 변화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여전히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만족감을 매우 크게 느끼고 있는 저로서는 한 시간 반 동안 어두운 공간에서 온전히 몰입한 후 느끼는 감각이나 감정들을 사람들이 점점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올드 패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 깊은 감정을 전하는 콘텐츠도 계속 만들고 싶다 보니 사람들이 점점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지고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기대감도 있어요. 저도 숏폼드라마를 제작했고이 시장을 선도하는 좋은 콘텐츠들을 만들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거든요이런 새로운 흐름의 콘텐츠 시장에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와 기대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점점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즐기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가겠다는 핵심적인 방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Q. 그럼 숏폼드라마 제작 과정이 기존 영화 작업등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요?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예산과 시간이었죠. 모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늘 어렵고 고민이 많지만숏폼드라마의 현장은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느꼈습니다또 하나는 한 회차가 1 30초 내외로 짧다 보니 회차별 흥미를 어떻게 끌어 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 컸습니다.

<귀살>은 캐릭터가 중심을 잘 잡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부분은 잘 살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숏폼드라마가 가진 특유의 속도감과 재미를 어떻게 살릴지는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성장해 가야 할 것 같아요.

 

  

Q. 이런 환경적인 차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고자 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호흡을 짧게 가져가는 것이었어. 영화 같은 경우는 초반부를 길게 끌고 가면서 서사를 쌓아갈 수 있는데숏폼드라마는 한계가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짧은 호흡 안에서도 몰입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그래서 굿당이나 살풀이 장면에서 가짜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려고 더 노력했어요.

숏폼 드라마는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를 중시하다 보니 디테일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요저는 그 부분까지 신경 쓰고자 했고 나중에 다시 봐도 잘 고증된 장면처럼 보이고자 했습니다그 외 제작에 있어서 제 스타일을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배경과 공간, 인물이 어떻게 조화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생각했기 때문에 완전히 ‘이건 포기 못 한다’고 고집했던 부분은 특별히 없었어요.

 

 

Q. 그래서인지,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시는 태도가 너무 인상적이었는데요,

  

사실 저는 어떤 피드백이라도 논리적으로 정리된 의견이라면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만든 영화 상영 후 악플을 보더라도 그 비판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면 오히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깊이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던지는 의견은 잘 듣지 않는 편이에요
이번 <귀살>의 경우도, 시나리오 자체를 굉장히 탄탄하게 봤기 때문에 이야기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여러 변수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중요한 건 작품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바탕이 된 의견이냐 아니냐인 것 같아요.

 

 

PERSPECTIVE 4. 형식을 넘어서되 본질을 남긴다


 


Q. 장르를 불문하고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좋은 콘텐츠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는 사고를 확장 시켜주는 영화나 작품을 좋아해요예를 들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보면서 ‘저런 마음을 가진 아이들도 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을 경험하게 해준 작품이었고, 그래서 좋은 영화라고 느꼈어요.

결국, 제 시야를 넓혀주는 작품들이 저에게는 좋은 영화예요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작품이죠.
단순히 즐기는 걸 넘어서, 제 안에서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작품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숏폼드라마 뿐만 아니라 엔피와 다양한 협업을 하고 계시는데요, 어떤 점이 기억에 남으시나요?

  

오프라인 행사 영상 작업은 기존의 영상 문법과는 다른, 다양한 작업이 많아요그래서 저는 항상 재밌게 하거든요엔피 XR STAGE 에서 진행했던 작업도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이날치 XR 콘서트나 컴투스 쇼케이스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사전에 의견 충돌도 있고, 어떻게 찍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어쨌든 계속 도전하는 개념으로 재밌었어요커머셜 영상 등의 전형적인 영상 작업도 좋지만, XR STAGE의 촬영과 영상 작업이 개인적으로도 큰 모멘텀이 됐어요.

 

  

 

 


 

신현규 감독에게서 찾은 

New Perspectives

 

1. 일상의 경험이 창작의 자산이다. 축적된 영감들 위에 기회가 쌓인다.

2. 변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환경은 스스로 만드는 것!

3. 시장의 변화에 대한 유연한 마음과 본질을 지키는 힘의 공존이 필요하다.